[컬럼] 도시의 최전선 ③ 내진 말뚝
기획 의도
필자 이강주 교수는 30년동안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저서 「도시의 최전선, 열린 도시 지하공간(2022)」을 출간했다. ‘건축 문명의 새로운 시작은 지하입니다. 최초 인류가 지하를 거처로 삼았듯이 최후 인류 또한 지하에 거주하지 않을까요?’라는 머리글로 시작되는 이 책은 세계 여러나라의 지하공간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지하의 잠재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하였다. 지난 1·2월호에서 ‘1편 열린 도시 리듬 만들기’ ‘2편 지하의 공학과 미학’를 다뤘고, 이어 이번호에서는 ‘3편 내진 말뚝’을 다룬다.
여기 근육질의 사람이 있다. 얼마나 까다롭고 정교하게 운동을 했는지 복부부터 어깨까지 온통 근육으로 다져졌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그 사람의 전신을 비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체는 너무 부실하다. 서 있기는 하는데 누가 와서 부딪히면 바로 넘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번 주제는 이 비유와 관련된 것이다.
대지진 발생
2023년 2월 6일 새벽, 튀르키예 동남부에서 진도 7.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계속하여 진도 4.0 이상의 여진이 100여 차례 넘게 이어지면서 많은 인명들이 희생되었고 도시는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지진은 아프리카판, 유라시아판, 아라비아판으로 둘러싸인 아타톨리아판의 지각(地殼) 활동으로 일어났는데, 이처럼 21세기 들어 강력한 지진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경각심을 갖게 한다.
2004년 진도 9.15의 기록적 강진으로 일어난 대형 쓰나미가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를 덮쳐 이십삼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 2008년 진도 8.0의 중국 쓰촨성 대지진으로 팔만칠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부상자는 삼십칠만 명이 넘었으며 이재민은 사천육백만 명에 달했다. 2010년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발생한 진도 7.0의 지진은 삼십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었고 8만여 채의 건물을 무너트렸다. 2011년 진도 9.0의 동일본 대지진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만 명이 넘는 사망, 실종자가 나왔을 뿐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대거 유출되었는데, 이는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골치덩어리로 남아있다. 2015년 진도 7.8의 네팔과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지진은 수천 명의 사망자를 야기했다.
튀르키예 지진으로 손상된 건물들을 화면으로 보니, 옥상부터 1층까지 그대로 주저앉아 형체가 없는 건물이 있고 형체는 유지한 상태로 자빠진 건물이 있다. 지진 시 건물에서는, 당연한 얘기이지만, 기초가 제일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잘못된 확신
오랫동안 한반도는 지진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진도 5.8과 5.4의 지진들이 경주(2016년 9월)와 포항(2017년 11월)의 건물들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지진에 대한 공포와 함께 건축에서 법제적인 대책들이 수립되었다.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 궁지에 빠지는 것은 무엇을 몰라서라기보다 잘못된 확신으로 인한 것이 더 크다고 했다. 확신은 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어놓는 것이니, 이 말의 속내는 전문가의 말을 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 잘못된 확신의 전형적인 사례로 건물 기초를 구성하는 말뚝에 대한 전문가들의 태도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때, 땅속에 묻혀있는 건물 기초부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수평력이 작용하는가?’ 질문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행적인 응답은 작용하지 않는다이다. 이는 땅 속 구조물이 주변 땅과 동일하게 움직인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땅속은 대부분이 흙, 그리고 아주 드물게 암반과 물로 구성되고 건물 하부는 콘크리트와 강철로 자리를 잡는데, 지진이 나면 어찌하여 서로 다른 두 물질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땅이 폭신하고 말랑하게 건물을 꽉 잡고 있어 땅속 건물은 결국 땅처럼 될 것이라는 상상력이 작용한 걸까(그렇다면 지하 벽체는 왜 토압을 반영할까).
잘못된 확신은 자연스럽게 법을 가볍게 보는 방향으로 인도하니 상황은 점점 궁지에 몰리는 쪽으로 진행된다.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규칙’은 건물의 구조 안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법이다. 이 규칙은 건축물의 구조내력에 주요한 부분을 구조부재로 정의하고 기초 또한 당연히 구조부재에 포함하고 있다. 전문가는 당연히 구조부재가 축방향력, 휨모멘트, 전단력, 비틀림 등의 외부 힘들에 충분히 버티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지진 시 기초, 특히 말뚝 부분에 외부 힘들이 전달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를 가볍게 여긴 결과, 구조내력을 확보하지 못한 건물들이 양산되고 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였기에 망정이지, 설계기준 강도인 진도 6.5의 지진이 왔다면 기울어지고 넘어진 건물들이 여기저기 펼쳐졌으리라.
지진의 영향
말뚝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고집은 말뚝을 건물 전체의 무게를 받쳐서 땅속에 안정되게 자리 잡는 역할로만 보는 것이다. 지진에 대한 걱정이 없거나 무시해도 괜찮을 만큼의 시대에는 이 생각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의 시대에는 다음의 두 경우 때문에 그 고집을 꺽지 않으면 안된다.
첫째, 건물의 흔들림이 전단력으로 작용한다.
일본건축학회는 지진이 발생하여 건물이 흔들리면 건물의 밑면 전단력이 말뚝에 수평력으로 전달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 대응 방안을 건물과 말뚝을 일체화하여 계산, 건물과 말뚝을 분리하여 계산, 말뚝 숫자로 하중을 나누어 하나의 말뚝만 계산, 이론식의 활용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 지반의 움직임이 지진 토압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건설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넓은 면적으로 기초가 설치될 수밖에 없는 경우, 지진이 오면 지상 건물의 흔들림보다 지반의 움직임으로 발생되는 토압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지진으로 인한 땅의 압력을 말뚝에 적용해야 한다.
건축용 내진 말뚝
교량을 설계하는 토목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내진 말뚝을 적용해 왔다. 상부는 강관이고 하부는 PHC로 된 말뚝, 상부는 철근보강 PHC이고 하부는 PHC로 된 말뚝, 그리고 전체 강관 말뚝 등이 그것들이다. 안타깝게도 건축 분야는 내진 말뚝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활발하게 연구 개발한 결과, 2023년 현재 표에서와 같은 내진 말뚝들이 출시되었다.